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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og/독서로그

여행의 기록 - 김영하

by Jaeseok_Shim 2020. 12. 27.

이병률 작가의 '끌림'이란 책이 있다. 오래전이지만 '끌림'이라는 여행 산문집을 읽고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커졌었다. 당시 사진에 대한 열정이 많았던 시기였는데, '끌림'에서 소개하는 사진과 글이 좋아 무작정 떠나고 싶어 졌었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는 여행을 가면 좋겠다는 막연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당장은 안 되겠지만, 책을 읽고 마음에 불이 지펴지면 여행 계획이라도 세워두어야겠다는 막연한 희망에서 골랐던 책이다. 결론적으로, 여행이라는 불씨가 생겨나진 못했다. 독서의 과정은 여행에 대한 에피소드와 작가의 이야기들로 재미있게 마무리했지만, 여행의 불씨를 주는 도서는 아니었다.(적어도 내 기준에서 말이다!)

 

작가의 여행 이야기는 감성보다는 가벼운 교훈처럼 다가왔다. 여행에 대한 의미도 재해석할 수도 있게 되었다. 여행에 대한 불씨가 생겨나지 못했다고 아쉬울 건 없다. 여행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는 건 분명 즐겁고 유쾌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책의 중간쯤 과거 재미있게 시청했던 '알쓸신잡'의 여행도 소개해주었다.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p.18

 

작가는 호텔이 좋다고 한다.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 해도 떠나면 그만이다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집이라는 공간은 슬픔 뿐 아니라, 고마움, 애잔함 등등도 묻어 산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p.64

 

작가는 여행함으로 인해 여행자가 기호화된다고 했다. 그걸 nobody라고 표현했다. 내가 작가든 회사원이든 여행하는 순간, 나는 일상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 또한 현실을 벗어나는 의미가 되는 것 같았다. 상반된 개념일 수 있지만, 작가는 후반부에 여행은 소설과 같다고 했다. 여행 중에는 소설의 플롯과 같은 질서가 있고 주인공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 된다. 현실을 벗어나면 여행자는 기호화 되지만 그렇다고 여행 중에 주인공이 아닌건 아니다. 여행의 주인공은 여행자이다.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 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nobody) 일뿐이다. -p.155

 

실뱅 태송의 말처럼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하러 그 먼길을 떠나겠는가. -p.179

 

여행 역시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으로 움직이지만 이주나 피난과는 다르다. 여행은 자기 결정으로 한다. 자기 결정은 통제력과 관련이 있다. 여행은 이주와 달리 전 과정을 계획하고 이를 통제할 수 있다. 비행기와 호텔, 렌터카를 예약하고 대부분의 경우 그대로 진행된다. -p199

 

이주와 여행의 관계는 마치 현실과 소설의 관계와 같다. (중간 생략) 현실은 줄거리가 없다. 어떤 일들이 불쑥불쑥 일어난다. 때로는 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난다. 아름다운 별똥별이라고 생각하고 쳐다보면 무언가가 거대한 운석으로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질 수도 있다. (중간 생략) 이야기는 다르다. 현실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만 질서가 있다. 제한된 인물들, 특히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 p.200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라고 생각하면 너무 애닯다. 무슨 발려들이 이토록 자주, 먼저 떠나는가. 나에게 녀석들은 반려가 아니라 여행자에 가깝다. 새미와 이슬이도, 방울이와 깐돌이도 잠시 우리 집에 왔다가 떠났거나 떠날 것이다. -p.212

 

나는 여행을 많이 가진 못했다. 늘 떠나고 싶지만, 가족과 논의하고 결정하는 단계에서 성사되지 못한다. 머뭇거리다가 놓치게 된다. 이 책으로 여행에 대한 불은 지피지 못했지만, 여행에 대한 이성적 기준을 더해주었다. 내가 작가처럼의 여행자는 아닐 수 있으나, 나는 여전히 여행을 꿈꾼다.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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